Intro

이 글을 쓰기까지 참 많은 고민을 했다. 지난 1년, 더 넓게는 2년 동안 있었던 일들을 퍼블릭한 공간에 꺼내놓기까지 꽤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개인적인 가치관 (개인적 환경, 종교 등)이 많이 반영된 글이라, 모두에게 공감이 가거나 설득력 있는 글이 되긴 어렵겠지 싶다. 그럼에도 누군가에게는 이 글이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그리고 지난 1년 넘게 참 많이 힘들고 고생한 시간을 감사로 견뎌낸 나 스스로에게도 '잘 해냈다고' 칭찬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이 긴 글을 시작해본다.

2023년 1월 - 2024년 6월

2023년 1월, 석사 2년차 마지막 학기를 앞둔 겨울방학이었다. 그 시기, Computer Science 박사 과정에 지원해놓고 결과를 기다리던 중이었고, 또 운 좋게 (?) 붙은 Microsoft에서 data scientist internship을 하고 있었다. 한 마디로 정말 정신없던 시기였다. 나는 기독교 신자라, 그때 참 교회 가서 열심히 기도했다. 다소 기복신앙적인 기도였을지도 모르지만, “딱 한 곳만 붙게 해주세요. 붙여주시면 정말 열심히 살게요.” 새벽마다 일어나서 그렇게 간절히 빌었다. 하지만 결과는... 올 리젝. 다 떨어졌다. 뭔가 잘못된 거 아닌가 싶었다. 학교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인턴, 연구, 성적, 동아리 등등 뭐 하나 빠짐없이 채워놨는데, 어떻게 단 한 곳도 붙지 못했지? 라는 생각에 멘붕이 왔다. 주변 사람들도 '내가 왜 떨어졌지, 이 정도 스펙에 왜 박사를 떨어지지?' 라는 당황하던 반응이었다.

한달 반쯤을 깊게 고민해 본 결과, 나름 내 약점을 분석해봤다. 결국 논문 실적, 특히 NLP 쪽 논문이 부족했던 게 가장 큰 문제였던 것 같았다. 그래서 2023년 5월, 미국의 NLP 교수님들에게 무작정 cold email을 보내기 시작했다. 채용 공고가 뜬 것도 아니었고, 그냥 메일을 보내는 거라 다들 무모하다고 말렸다. 근데 이상하게도 그때는 확신 같은 게 있었다. “딱 한 명만 나를 받아주면 돼.” 라는 마음으로 매일 10명씩 교수님들을 검색해서 연구 기회를 달라고 메일을 보냈다. 감사하게도 한 교수님이 관심을 보여주셨고, 인터뷰 후 2023년 8월에 다른 주로 이사를 하게 됐다. 그때는 정말 행복했다. 꼬이고 꼬였던 실타래가 조금씩 풀리는 기분이랄까.

논문 실적이라는 약점을 빠르게 메우기 위해 체력과 멘탈을 갈아 넣었다. 2평도 안 되는 정말 조그만 방에서, 하루 6시간도 제대로 못 자고 새벽까지 일한 날이 허다했다. 박사 재도전을 위해 온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그 결과, 6개월도 안 되는 기간 동안 4편의 논문에 내 이름을 올릴 수 있었고, 대부분은 2저자나 공동 1저자였다. 대감을 안고 2023년 12월에 다시 박사 지원을 시작했다. 이번엔 인터뷰도 받고, 교수님들과 대화도 나누고, 지난번보다 훨씬 나아진 과정이었다. 그런데 결과는... 또 올 리젝. 전부 불합격이었다. 전체 불합격. 논문도 있었고, 인터뷰도 잘 봤는데 도대체 왜? 머릿속은 물음표 천지였다. 설상가상으로 2024년 5월에는 펀딩 문제로 연구 계약 연장도 불발됐다. 미국에 체류할 수 있는 시간은 새 풀타임 직장을 잡지 않는 이상 딱 2달 남았었다. 앞이 막막했다. 이대로 돈만 쓰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처지가 된 것인가? 부모님께 정말 자랑스러운 큰딸이 되고 싶었는데 이렇게 비루한 처지가 되게 나를 내버려두시는 하나님은 도대체 무슨 생각이신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와중에 건강도 무너졌다. 룸메이트 눈치 보느라 제대로 된 밥 한 끼 못 먹고, 냉동식품과 배달로 버틴 1년의 생활이 결국 몸에 독이 됐다. 몸이 안 좋아지니 연구도 제대로 못 하겠고, 정말 총체적 난국이었다. 그럼에도, 두 번의 좌절을 신앙으로 버텼다. '이렇게 상황이 흘러가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겠지, 잠시일 뿐 곧 더 좋아질 것' 이라고 믿고, 또 믿었다. 그렇게 2024년 6월이 다 지나가고 있었다.

2024년 7월 - 12월

28년 인생을 통틀어 이 시기에 제일 마음 고생을 심하게 했다. 먼저, 그동안 믿고 의지하던 인간관계마저 처참하게 산산조각 나는 사건까지 터졌다. 마치 검은 폭풍우가 머리 위를 계속 맴돌면서 숨 한번 쉴 틈도 안 주는 느낌이었다.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칼이 몸을 두 번이나 찌르고 지나간 것 같은 아픔이 느껴졌다. 믿을 수 없었고,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고, 참 많이 힘들었다.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가 사고를 당하시면서 많이 편찮아지셨다. 하루하루 눈물 마를 날이 없었다. ‘나 때문에 마음고생 심하게 하시다가 엄마가 큰 병을 얻으신 건가’, 이 전 사건으로 인해 내가 큰 딸로서 부모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아픔을 드린 것 같아 죄책감이 심했다. 두 동생들에게도 본을 보이지 못해 부끄러웠다. 모든 악조건이 계속 되다 보니, ‘이게 요즘 말로 세상이 나를 억까하는 건가’ 싶은 마음에, 지금까지 성실하게 살고 바르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던 내 스스로에 대해 회의감이 밀려왔다.

그래도 인생은 진짜 새옹지마라는 말, 그게 괜히 나온 게 아니더라. 기적처럼 7월 말에 새 직장을 구하게 되었고, 다행히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게 됐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내가 다니던 (그리고 현재도 다니고 있는) 한인 교회 성도 분들이 나의 모든 상황을 듣고 참 많은 위로와 도움을 주었다. 체중이 두 달만에 10키로가 빠지고, 한때 먹보로 유명했던 내가 짜파게티 반 봉지도 못먹는 걸 보고 교회 청년부 언니 오빠들이 충격을 받았단다. 또 교회 목사님께서 참 많이 챙겨주시고 기도해줬다. 성경에서 말하는 '성도 간의 교제와 사랑'을 이 분들을 통해 많이 배우게 되었다. 그렇게 마음속 상처들도 조금씩 아물기 시작했다. 예전의 밝고 긍정적인 나로 서서히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사람이 시련을 몇 번 겪고 나면 뿌리가 단단해진다는 말처럼, 나 또한 이 시기동안 내적 성장을 많이 이룰 수 있었다. "사람"에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 온전히 믿고 의지하게 되는 삶이 저절로 시작이 되었다. 또한, 신앙적으로 굉장히 미성숙했던 과거 나의 모습을 철저하게 반성하고 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나에게 상처 주었던 사람들을 용서할 수 밖에 없는, 아니 용서를 넘어서 그들을 축복할 수 있을 정도의 마음, 또 그들 또한 진정으로 나와 같은 회복의 시간을 보내기를 기도해 줄 수 밖에 없는, 이런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다. 12월 첫째 주에는 교회에서 대표기도도 해보게 되는 기회도 얻고, 점점 내 마음의 슬픔이 살짝씩 옅어져 갔다. 아주 조금씩 마음의 흉터 주위로 새살이 돋아가는 기쁨에 '진정한 감사'를 맛보았던 2024년 하반기였다.

2025년 1월 - 3월

하나님 보시기에 내 마음의 그릇이 단단해졌다 라고 판단하신걸까. 연초부터 직장에서 해고됐다. 또 다른 고난이 시작되니 문득 '정말 나한테 문제가 있는걸까? 왜 이렇게 내 인생은 쉽게 풀리지가 않을까.' 라는 생각에 너무 힘들었다. 더 당황스러웠던 건, 막내 동생이 ESL 프로그램을 듣기 위해 미국에 와서 나랑 같이 살기 시작한 때였다는 점이다. 동생의 학비와 생활비도 내가 다 부담하기로 했는데, 거의 오자마자 내가 해고를 당한 거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이제 우린 뭘 먹고 살아야 하나…”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직장에서 부당한 행동을 범한 일도 없기에 이번 고난은 '이 또한 하나님의 계획' 임을 꾹 믿기로 했다. 또 지난 몇 달간의 나의 개인적인 힘듦을 잘 알고 있던 교회 청년부 사람들에게도 현 상황을 오픈하면서 다시 한번 나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부탁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게 되었다. 교회 청년부에서 몇몇 언니 오빠들도 내 얘기를 듣더니 '이제 그 직장은 유효기간이 끝났고, 이제 새로 옮겨갈 곳이 있는 것 같으니 계속 기도하자.' 라는 말을 하는데, 내 마음에 더 크게 와 닿았다. 그래서 '아! 지금부터 새로운 테스트가 시작되나 보다. 나는 절대 이번에는 겁먹고 굽히지 않겠어' 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취준 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예전의 나였다면 지레 겁부터 먹고 계획을 아주 철저하게 세워서 취준 생활을 보냈을 것이다. 물론 이렇게 "갓생"적인 생활은 겉으로 보기 좋지만, 실상은 하나라도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때 거기서 비롯된 스트레스는 어마어마했고, 그럴 때마다 바로 심적으로 무너져서 방에서 매일 찡찡대면서 울었다. 한 마디로 멘탈이 굉장히 약했다. 이런 내 모습을 신앙적으로 돌이켜보면, 나의 욕심이 더 앞서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지도, 더 앞서서 이렇게 계획하고 행동하는게 맞는지 "하나님께 물어보지 않는 것"이 큰 결점이라고 판단했다. 이번 시기에는 다르게 해보자고 결심했다.

첫 번째, 행동하기 전 "하나님께 물어보기". 코딩테스트를 준비하거나 교수들한테 포지션 관련해서 연락하기 보다는, 기도로 먼저 물어보면서 "응답을 기다리는" 방법을 택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하고 기도만 하는 것은 절대 맞지 않다...! 이 시기에 알고리즘 공부, 이력서 업데이트 정도는 하고 있었다 - 물론 예전의 나와 비교하면, 이 정도는 정말 일을 안하고 있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나 한정!). 두 번째로, '만약 ~가 안 되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보다, '안 되면 이게 내 길이 아니였나 보지' 라는 생각으로 바꿨다. 그랬더니 과거 실패에 대한 후회/반성 보다는 곧 다가올 내 창창한 미래를 (with God) 더 꿈꿀 수 밖에 없도록 내 사고회로가 자연스럽게 바뀌어졌다. 결과적으로 이 시기를 지나며 멘탈은 철벽이 되었고, 웬만한 일엔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갔다. 내 마음 그릇이 점점 넓어지고, 단단해지는 걸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2월 중순이 되었을까, 갑자기 링크드인으로 R&D 팀 디렉터 분이 연락을 주었다.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방향에서 온 기회였다. 참고로, 이 회사는 영주권자 이상만 뽑는다고 아예 직무 공고에 나와있기 때문에 애초에 지원조차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며칠 뒤 이 분과 줌미팅을 가졌는데, "미네소타 거주 + NLP 리서치 경험 + healthcare AI 분야 경험" 이 있는 사람을 링크드인으로 검색했더니, 내가 딱 검색 결과 페이지에 추천인으로 떴다고 그러는데, 바로 이 때 하나님의 크신 계획을 깨달았다. 내가 왜 2년 전 굳이 이사하지 않아도 되는 포지션이었지만 미네소타로 이주하게 되었고, 왜 작년에 지난 직장이 있는 타 주로 이사가지 않고 계속 미네소타에 거주할 수 있도록 상황이 흘러갔고, 왜 그 전 직장 (헬스케어 NLP 연구소) 에서 잠깐이지만 일하게 되었고, 마지막으로 왜 내가 NLP를 지금까지 공부할 수 밖에 없었는지 등등 지금까지 의문이었던 내 상황에 관련된 모든 퍼즐이 단번에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더 감사했던 것은, 내가 현재 비자 신분에 대해 솔직하게 오픈했는데, 오히려 그 디렉터 분이 줌미팅 때 나를 좋게 봤는지, "자기 팀에서 같이 일하고 있는 컨설팅 회사에서 H1B 비자를 스폰서 해주니까 그 회사 소속으로 일하면서 실상은 본인 팀 직원으로 일할 수 있도록" 나의 모든 상황 편의를 직접 봐 주셨다. 그렇게 한 달도 안되는 시간 동안 모든 인터뷰를 끝내고, 마침내 3월 중순에 Mayo Clinic 이라는 미국에서 유명한 병원 IT 팀 (Applied AI Product Team) 으로 취업이 되었고, 현재까지 잘 다니고 있다. 직무는 AI Engineer, 지난 몇 년간 연구하고 공부했던 LLM 을 이제 enterprise 레벨로 scale up 하는 일을 맡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뤄주신 일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었던 상황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3월 마지막 주에, 교회 청년부 수련회에서 내 스토리를 간증했다. 먼저 (1)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로 시작 - (2) 기도하는 과정 가운데 주시는 마음에 대한 순종 - (3) 하나님이 계속 일하고 계신다 라는 믿음, 마지막으로 (4) 정직하게, 꾸밈 없이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대신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 겸손 - 이 4가지 모습이 결국에 하나님께서 나 이민화에게 원하시던 것이었구나 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두 번의 박사 진학의 실패에 대한 고찰

이번 취업 준비 기간을 통해, 내가 왜 박사과정에 계속 떨어졌는지에 대한 답을 어느 정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서류상으로는 꽤 괜찮은 박사 지원자였다. 논문 실적도 있었고, 관련 경험도 많았으며, 추천서도 좋은 분들께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가장 중요한 질문인 ‘나는 왜 박사를 하고 싶은가?’에 대한 명확한 이유가 나에게 없었던 것 같다. 쉽게 말해, ‘나는 왜 NLP를 공부하고 싶은가?’, 더 나아가 ‘5~6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할 만큼 이 분야에 정말 열정이 있는가?’ 라는 질문에 스스로 납득할 만한 답을 하지 못했다. 그냥 이 길을 따라오다 보니 자연스럽게 박사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던 마음, 그리고 박사 진학이 미국 체류 신분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방법이기도 하다는 점, 마지막으로 박사 학위를 따야만 내가 생각하는 high-paying job에 지원할 수 있을 거라는 현실적인 이유, 아마 이런 정도의 이유로 CS 박사를 희망했던 것 같다. 그래서 두 번의 지원 모두 결과가 좋지 않았던 것도 어쩌면 당연했을지 모른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박사과정에 들어갔다면, 오히려 더 큰 문제를 겪었을 수도 있었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길을 막으신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나중에 내가 진심으로 공부해보고 싶은 주제가 생긴다면, 그때 다시 박사 과정을 고민해볼 수 있지 않을까. 지금으로서는, 개발자로서 실무 경험을 쌓고 지식을 채워나가는 것이 우선순위인 것 같다.

2025년 7월, 현재 나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서의 삶, 생각보다 적성에 잘 맞는다. 첫번째, 코드를 짜고 테스트 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도 팀원들과 같이 디벨롭하는 agile한 사이클이 재미있다. 두번째로, 정말 좋은 팀원들을 만났다. 내 수퍼바이저는 PhD 출신이라 아카데미아에서 인더스트리로 막 입성한 나에게 조언을 정말 많이 해주고, 내가 팀에서 더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나한테 Credit을 많이 준다. 다른 팀원들도 다 친절하고 미팅 때마다 화기애애 하다. 세 번째, 100퍼센트 재택환경이다. Mayo Clinic HQ가 로체스터에 있어서 다시 이사를 가야 하나 싶었는데, 우리 팀원 자체가 다 리모트라 지금 살고 있는 미니애폴리스에서 이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 다니고 있는 교회를 계속해서 다닐 수 있게 되어서 너무너무 좋다. 마지막으로 제일 감사한 것은, 5시 퇴근 이후에는 "일"을 굳이 더 안 해도 된다 라는, 인더스트리의 가장 큰 장점을 맛 보고 있는 중이다.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적성에 맞는 직무 + 적당한 금융치료 + 워라밸 + 100% remote + 좋은 팀원들 = "완벽" 그 자체인 직장을 찾았다. 물론 빅테크 회사만큼 복지가 훌륭한 것은 아니지만, 막 사회로 나온 나에게는 많은 것을 (특히 clinical AI) 배울 수 있는 좋은 직장이다. 의사들과 직접적으로 일하게 되니 더 재밌는 것도 있다. 나는 잘 몰랐는데 미국에서 Mayo Clinic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병원이자 메디컬 연구소라고 하더라. 그래서 그런지, 굉장히 어려운 의료 연구 케이스를 직접 다루고 AI 모델을 개발할 수 있는 기회도 얻게 되니, 재미가 2배.

그리고 건강도 다시 회복했다. 예전에는 스트레스를 먹는 걸로 풀면서 자극적인 음식만 찾았는데, 작년에 10키로 이상 체중이 감소한 이후로는 건강하게 유지어터 식단도 계속하고 운동도 꾸준히 했다. 그래서 지금 1년이 지났는데도 계속해서 감소된 몸무게를 잘 유지하고 있다. 몸이 정화된 기분이랄까,더 이상 예전같이 폭식하거나 자극적 음식이 땡기지도 않고, 많이 먹어도 몸이 스스로 조절할 수 있게 되는 절제력도 키울 수 있었다. 가장 좋은건, 입고 싶은 옷도 마음껏 입을 수 있는 것. 내가 원하던 옷 핏이 제대로 나오니 외적인 자신감도 훨씬 상승하게 되었다. 그렇게 다이어트를 해도 안 빠지던 살이 마음 고생으로 빠져서 처음엔 어이가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완전 럭키비키다.

또 막내 동생도 올 가을에 미네소타 대학교로 편입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세 자매가 드디어 미국에 다 거주하게 되었다니 정말 놀랍다. 동생을 옆에서 직접 챙기는게, 좋을 때도 있고 또 말 안 들으면 짜증날 때도 있지만 (ㅋㅋㅋ), 오랜만에 "큰언니" 모드로 동생과 같이 사는 내 모습을 다시 되찾게 되어 감사할 때가 많다. 물론, K-장녀 모멘트가 많이 나와서 동생들이 조금 힘들수도 있지만?!

끝으로

이 글을 쓰다 보니 지난 1년 반동안 내 인생에서 정말 많은 일들이 일었구나, 참 많이 힘들었고, 참 많이 울었다. 그런데 지금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나의 모든 힘듦을 이미 다 알고 계신 하나님께서, 마침내 내가 모든 상황을 잘 견디고 이겨내도록 도우시고 마지막엔 감사를 고백할 수 있도록, 그래서 나를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허락하셨던 일종의 인생 트레이닝라고 믿는다. 그래서 이제 작년에 있었던 일들은 더이상 내게 트라우마가 아니라, 나를 축복의 통로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개입이라고 고백한다. 마지막으로 지난 1년 동안 나를 지탱해준 성경 말씀을 공유하고 싶다. 특히, 에베소서 전체는 나의 상처를 치료해준 성경 구절들이 가득하다. 혹시나 이 글을 읽고 있는 기독교인 독자 중에 마음이 지치거나, 헤매고 있다면, 꼭 한번 에베소서를 정독하시는 걸 추천드린다. 우리가 어떤 삶을 살기를 바라시는지 하나님께서 정확하고 뚜렷하게 말씀하시는 성경 챕터라고 생각한다.
  • 시편 1장 1-2절: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 에베소서 중: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올해 하반기에는 어떤 일이 또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기쁨일 수도 있고, 또 한 번의 고난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젠 고난을 이겨낼 방법을 터득하니 예전만큼 두렵진 않다.

그래서 지금, 나는 참 행복하고, 참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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